11월7일(토)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육상단의 선수단 전용트랙에서 개최된 마라토니아데이. 42.195km를 홀로 달리며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봉주 선수가 20년간의 마라톤 생활을 해오며 남긴 역사적인 순간이 담긴 동영상이다. 이날 행사에서 상영된 동영상은 참가자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했으며,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출발지점에 선 이봉주 선수에게 또 다른 역사를 기대케 했다.
1970년 충남 천안 평범한 농촌 마을. 당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넉넉하지 못했던 시골집 나의 고향. 3km 떨어진 초등학교를 매일 뛰어서 등교하며 내 다리와 심장은 어느덧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상과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던 시골 소년. 반바지 하나를 장만해 가입했던 중학교 육상부는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학교 시절 전국 대회에서 3위 이내 입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저는 실업팀 입단을 걱정해야 할 그렇고 그런 선수에 불과했습니다.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훈련 또 훈련,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 도로를 달렸고, 다른 선수들이 멈출 때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마라토너의 꿈 올림픽, 올림픽 은메달 기뻤습니다. 골인하는 순간 너무나 기뻐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 3초, 3초의 한이 나를 계속 달리게 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1996년 후쿠오카마라톤 우승, 1998년 로테르담 마라톤 한국기록경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0년 도쿄마라톤 한국기록경신, 새롭게 둥지를 튼 삼성전자 육상단에서 맞이한 최고의 전성기, 이전 어느 경기보다 강한 훈련과 철저한 준비, 시드니 올림픽 출발선에 선 나는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 앞 선수에게 걸려 넘어진 저는 혼란한 마음에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없었고, 결국 하늘은 나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 마라톤 인생의 최고의 하이라이트 보스턴 마라톤 우승.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국민 마라토너'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과분한 호칭 '국민 마라토너' 나의 레이스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내 마라톤 인생의 동반자 오인환 감독님, 나를 믿는 가족들 변함없는 호응으로 지켜 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너무나 큰 사랑을 주신 국민들이 있었기에 세 번의 올림픽, 또 한번의 좌절과 차츰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 모든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저에게 웃음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아프리카 선수들, 터질듯한 심장 박동 소리, 그 가운데 들리는 팬들의 외침,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저는 참 행복합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설레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있기에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 마라토너는 떠나지만 봉달이는 여러분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