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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남자마라톤 銀 메브라톰 케플레지기

게시일 : 2004-11-03 | 조회수 : 5,028

아테네올림픽 남녀마라톤 경기에는 래드클립의 기권, 노구치와 발디니의 금메달 획득에 못지 않은 의미 있는 결과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미국 선수가 남자는 은메달을 여자는 동메달을 획득한 것입니다. 마라톤의 변방이었던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일이? 도대체 남자 은메달리스트인 케플레지기는 누구란 말인가?

이런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기사가 일본 육상경기매거진에 실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국의 과학적 코스 분석과 이런 선수를 취재, 기사화하여 다음 경기에서 일본선수들을 대비시키는 모습 모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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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거리 부활의 기수

메브라톰 케플레지기 (Mebrahtom Keflezighi,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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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미국 장거리. 2001년 암흑에 광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에리트레아(Eritrea) 태생의 메브라톰 케플레지기가 10000m 미국기록을 15년 만에 처음으로 갱신했다.메브는 올해 8월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마라톤에 출전해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동 메달리스트인 캐스터와 함께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마라톤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최근까지 오랜 시간 하위권 성적에 있던 미국 마라톤. 올림픽에 있어서 남자부문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여자 부문에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마지막으로 메달에서 멀어졌다. 4년 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마라톤 선수권에서 우승자가 A표준기록을 깨지 못하고 남녀 한 명씩만 마라톤 대표로 출전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시드니 올림픽 후 미국 장거리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올림픽 다음해인 2001년에는 에리트레아 태생의 메부라톰 게플레지기가 스탠포드 대학 경기에서 10000m를 27분 13초 98로 주파, 1986년에 마크니노가 세운 미국기록(27분 20초 56)을 크게 갱신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2년에는 여자 디나 도로신(현 캐스터)가 똑같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10000m를 미국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30분대를 기록 30분 50초 32로 주파, 1992년 올림픽에서 린 제닝스가 수립한 미국기록(31분 19초 89)을 크게 갱신했다. 도로신은 2003년 런던 마라톤에서는 2시간 21분 16초를 기록했으며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존 베노이트 사무엘손이 1985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수립한 마라톤 미국기록(2시간 21분 21초)도 갱신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다방면에 걸친 전문가를 총동원해서 올림픽 마라톤 대표선수들을 위한 지원 팀이 결성되었다. 올해 5월에는 조지아 주립대학의 장거리 권위자인 데이빗 마틴 교수가 중심이 되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근교 츄라 비스타에 있는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서 마라톤 회의가 열렸다. 그 곳에는 올림픽 마라톤 대표선수와 배우자, 코치만이 아니라 올림픽 팀의 코치를 비롯해서 스포츠 영양학, 스포츠 심리학, 대기 오염 등의 전문가가 모여 올림픽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다. 마틴 교수는 작년 여름 아테네에 가서 올림픽 코스를 면밀히 시찰했다. 시찰에서 얻은 지식을 기본으로 마라톤 코스의 가상 현실적 투어를 작성. 그것을 기본으로 코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제시해서 해결책을 소개한 것이다.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선수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첫 번째는, 레이스를 시작한 처음 한 시간 동안의 더위. 그리고 두 번째는 탈수상태에 대한 위험이다. 해결책은 두 개. 첫 번째는 더위가 특히 심한 1시간 동안 페이스를 올리지 않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마시는 드링크를 남기지 말고 다 마시는 것. 왜냐하면 더위 속에서는 1시간 당 1리터에서 1리터 반정도의 물을 잃게 되므로.」라고 마틴 교수는 경고했다.

이 상태에서 맞이한 아테네 올림픽에서 디나 캐스터(도로신)가 출전 선수 중에서 4위(1위 폴라 래드클리프 영국, 2위 캐서린 테레바, 3위 마가렛 오카요 모두 케냐)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미국 내에서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더위 속에서 진행된 여자 마라톤에서 디나는 마틴 교수의 조언에 따라 첫 하프는 페이스를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달린 결과 미국 마라톤에 있어서 베노이트 이래 처음으로 메달을 따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맘모스 호반에서 케플레지기와 함께 매일 연습을 한 디나는 마라톤을 일주일 남겨 둔 케플레지기에 대해 「메부는 최상의 컨디션입니다.」라고 말했다.
레이스 직전에「여자 마라톤 경기 당일과 달리 별로 덥지 않았다. 처음 1시간은 천천히 달렸다. 선두와 많은 차이가 나지 않도록 달려라고 하는 코치의 지시를 받은 메부는 16km 지점에서는 선두에서 100m나 떨어졌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부터 서서히 순위를 올리고 있던 그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미국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녀 마라톤에서 공동 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에리트레아에서 미국 샌디에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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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부라톰(통칭 메부), 케플레지기는 1975년 5월 5일, 이웃 나라 이디오피아와 오랫동안 전쟁이 계속되는 에리트레아에서 태어났다. 집에는 전기도 수도도 나오지 않았으며 마을에서는 약탈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런 비참한 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해 부친은 이웃나라 수단까지 약 1000km의 길을 밤낮 가리지 않고 걸었다. 그 후 간신히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버지는 가족을 불러 들이기 위한 비용을 모으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3년 후에 겨우 가족을 이탈리아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메부가 10살 때였다. 그 후 1987년에 가족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로 이사를 갔으며 그 곳에서 메부는 본격적으로 육상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메부의 레이스를 보았습니다.」당시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대학교(UCLA)육상부 코치였던든 보브 라센은 그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레이스 중반에 과감히 승부수를 띄운 노부는「레이스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강한 승부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라센 코치는 탄성을 지르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이른 단계에서는 선수가 어느 정도의 선수가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메부는 코치로서 지금까지 가르쳐 온 선수들과 비교해도 훨씬 더 연습을 했기 때문에 전미 선수권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학교에서는 학생선수에게 주는 스포츠 장학금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UCLA 육상부에서는 남자 선수용으로 준비한 장학금은 12명 밖에 없으므로 대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장거리 선수에게는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왜냐하면 장거리 선수보다 단거리나 필드 선수가 대학 대항 선수권에서 대량득점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3학년에 걸친 1년간 메부의 성장을 지켜본 라센은 그에게 육상 장학금의 제공을 제시하면서 UCLA의 육상부를 권유했다.「장학금을 주는 것은 1학년 중에서 대학 대항 선수권에서 득점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기대를 받으면서 입학한 노부는 기대에 부응하면서 1학년 때 전미 대학 대항 선수권 5000m에서 5위에 입상했다.

대학에 진학했을 당시 메부는 1마일을 달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5000m 이상을 달릴 생각은 없다」고 한 메부. 그러나 라센 코치는 대학교에서는 주로 10000m에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메부는 대학교 2학년 때 10000m에 데뷔 했다. 첫 두 번의 레이스는 실패한 레이스였지만 다음 해에는 본인의 최고 기록을 28분 26초 55로 올렸다. 그리고 1997년 대학 3학년 때에는 NCAA 옥외 선수권에서 5000m와 10000m 두 종목에서 우승했으며 NCAA 옥내 선수권 5000m, NCAA 크로스컨츄리 선수권에서도 우승 했다.
미국으로 간지 10년째인 1997년 메부는 미국시민권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다음해 7월에 미국 시민이 되었으며 국제대회에서 미국대표로 달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다음해인 1999년에는 팬 아메리카 대회에 출전했으며 10000m에서 5위에 입상했다.

파죽의 기세로 올림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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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부에게 있어서 올림픽이 개최된 2000년은 비약적인 해이다. 3월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에서 미국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인 26위로 들어왔다. 4개월 후인 7월에는 미국 올림픽 선수권 10000m에서 우승했으며 미국 올림픽 대표선수가 되었다. 그 후에도 메부의 기세는 계속되었다. 8월5일 벨기에에서 개최된 5000m에서 미국 역대 4위인 13분 11초 77의 본인의 신기록을 수립한 메부는 올림픽 직전에 브리즈번에서 기분 좋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라센 코치는 메부가 10000m를 27분 30초로 달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27분30초의 기록으로는 이디오피아나 케냐의 대표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지만 모든 선수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올림픽에 임하는 것이 아니므로 5, 6위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라고. 라센 코치의 예상에 맞추어서 메부는 최저 10위를 목표로 연습을 했다.
컨디션이 좋은 때일수록 함정이 있다. 개회식에 꼭 출전하고 싶다고 한 메부는 육상경기가 시작되기 1주일 전에 선수촌에 입촌했다. 남반구의 초봄에 해당하는 시드니 올림픽 개최시기에 선수촌에서는 유행성 감기가 유행하고 있었다. 메부도 감기에 걸렸다. 그런 상태에서는 결승에 출전하게 된 것 만으로도 쾌거이다. 메부는 또한 결승에서 27분 53초 63의 본인의 최고 기록을 기록하며 12위에 입상했다.

다음해 3월 2001년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에서 13위에 입상한 메부는 귀국 후 캘리포니아 맘모스에서 3주간 고지연습을 한 다음 5월 4일 카디널스 대회의 10000m를 목표로 했다. 그 때까지 메부는 맘모스에서 1주일 정도 고지훈련을 한 적은 있지만 3주간이나 고지훈련을 한 것은 처음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열린 이 대회는 미국 장거리의 일인자 밥 케네디의 미국 10000m 기록 도전 경기로 주목을 받았다. 케냐 선수들이 경기를 이끌었으며 케네디와
케플레지기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16바퀴 째에 선두에서 뒤쳐진 케네디는 17바퀴 째에 기권을 했으며 관중의 기대는 메부에게 쏠렸다. 8000m를 지나 선두에서 뒤쳐진 메부이지만 미국 기록 달성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관중들은「달려라! 메부!」라고 하면서 합창을 했다.
4위로 메부는 27분 13초 98로 주파. 본인의 기록을 약 40초 갱신했으며 86년 마크 니노가 수립한 미국 기록을 약 15초 갱신했다.

괴로웠던 마라톤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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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2~3년이 지난 다음에 마라톤을 2시간10분대로 주파한 클룩 페파, 에드멘드사가 당시에 실시한 연습을 소화할 수 있게 되어서 메부도 2시간 10분 정도로 달릴 수 있다고 추측했다.」라고 하는 라센 코치의 지도 아래 메부는 2002년 뉴욕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했다. 마라톤 연습을 완벽하게 하지 않았으므로 무리하게 선두를 따라가지 않도록 라센 코치가 조언을 했다. 선두 그룹은 맨하탄에 들어가자 퍼스트 에비뉴에 늘어선 수 만명의 관중의 함성을 들으면서 서서히 속력을 올렸다.
선두집단과 같이 달리고 있던 메부는 센트럴 공원에 들어서서 쳐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몇 몇에게 추월당하면서 2시간12분35초의 성적으로 9위로 들어왔으며 그의 마라톤 데뷔는 괴로운 추억을 남겨 주었다.

2003년 당시의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A표준기록은 2시간 12분 이었다. 2002년 뉴욕 마라톤에서 2시간 12분 35초를 기록한 메부는 A표준 없이 올림픽 마라톤 선발 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올림픽 선발 전에서 A 표준기록을 깨면서 레이스를 이끌어야 되므로 페이스 메이커가 될 우려도 있다. 그러나 라센 코치는 2월 7일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을 앞둔 상태에서 가을에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었다. 올림픽 선발대회 전에 A표준 기록을 깨는 것에 모든 것을 쏟고 있던 메부에게 라센 코치는 2시간 10분을 목표로 평균 페이스로 달리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지시대로 달린 메부는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10분 03초로 본인의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한 두번째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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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그 후 메부의 연습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친 겨울에 무릎부상과 감기로 고생을 해서 생각대로 연습이 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1주일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은 포기하고 트랙으로 목표를 변경해야 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1월에는 연습을 시작하게 된 메부는 5주간의 마라톤 연습 후 예정대로 마라톤 선발전에 임했다. 레이스는 브라이언 세루가 선두로 달렸으며 우승후보인 메부와 컬페파를 포함한 그룹은 중간 점에서는 58초나 뒤쳐졌다. 25km 지나서 차이는 줄어들었으며 1마일을 남기고 레이스는 메부와 컬페파의 경쟁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막판 스퍼트에 뛰어난 컬페파가 이겼지만 메부도 5초 뒤진 2시간 11분 47초로 2위로 들어오며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다. 강한 바람 속에서도 2시간 11분으로 마라톤을 주파한 것은 메부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올림픽 마라톤 대표 선수로 선발된 메부이지만 7월에는 올림픽 선발전에서 10000m를 달렸다. 5000m를 13분 43초로 통과한 다음 17바퀴 째에 마지막 도전자 아비디라만을 따돌리고 후반에는 독주를 했다. 그래도 메부는 27분 36초 49의 올림픽 선발전 및 전미 선수권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독주로 이 정도의 기록을 세운 것은 미국 기록 27분 13초를 기록한 때 보다도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10000m와 마라톤 두 종목에서 대표권을 획득한 메부이지만 메달의 가능성이 큰 마라톤을 선택했다. 10000m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절대적인 힘이 있는 사람이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지만 마라톤, 특히 고온의 기복이 심한 코스에서는 기록이 좋은 사람이 메달을 딴다. 본인의 최고 기록이 2시간 10분인 메부도 2시간 4분대, 5분대의 선수들을 이길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2003년 여름 아테네 마라톤 코스를 견학한 라센 코치는 맘모스에 아테네의 코스와 비슷한 연습코스를 설정했다. 그 연습 코스는 아테네의 코스보다 짧으며 경사는 심하다. 그 코스에서 메부는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바꾸는 연습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 트랙 선수의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메부의 마라톤 연습은 2~3주간 집중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것 이외에는 기본적으로는 10000m의 트랙연습과 다르지 않았다.

은메달 리스트가 된 메부, 헬싱키는 트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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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1년 전 라센 코치는「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2시간7분으로 달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메부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맘모스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한 메부는 2시간7분대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다음 올림픽을 맞이했다. 올림픽 직전에 코스를 답사한 메부는 코치가「이 코스에서 우승 예상 기록은?」이라고 물었을 때「2시간 12분」이라고 대답했다. 코치의 생각과 일치했다.

여자경기와 달리 남자 마라톤 경기 당일에는 이상 기온이 아니었다. 그 사실에 입각해서 라센 코치는「처음 1시간은 페이스를 올리지 않고. 신중하게 선두그룹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이상 기온이 아니다.」고 조언을 해 주고 메부를 출발선에 세웠다. 충고대로 메부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선두 그룹이 보이는 위치에서 레이스를 진행했다. 11위에서 12위의 레이스로 전반을 진행한 메부는 하프를 1시간 07분 40초로 통과했다. 30km에서는 5위로 올라갔으며 5km를 남겨 두고는 4위로 올라갔다.
1992년 이후 반들레이 디 리마(브라질)를 지도하고 있는 리카도 디안세로 코치는 아테네에 도작하기 전부터 리마에게 레이스 중반에 스퍼트를 내도록 계획을 세웠다.

「여자 레이스에서 노구치가 중반에 스피드를 올려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그 작전은 성공한다는 자신감을 높여 주었다.」고 한 디안세로 코치는 그 이유를「출전멤버들이 32km지점을 20~30명 정도의 대규모 그룹으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한 사람이 먼저 속력을 올리면 스피드가 떨어지는 리마는 메달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르막에서 집단을 분산 시킬 필요가 있었다. 알고 있는 것처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라마알라가 두 번이나 스피드를 올렸지만 따라가는 선수가 없었다. 그 그룹의 행동이 리마에게 속력을 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속력을 올린 리마가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제2그룹은 리마에게 1분 가까이 뒤쳐지고 있었다. 레이스 종반 리마를 쫓아간 선수는 세계선수권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1998년 유럽 챔피언인 발디니(이탈리아)와 발디니에게「같이 가자」고 이탈리아어로 말한 메부이다. 메부는 35km부터 40km까지를 14분 21초로 커버했지만 같은 5km를 14분12초로, 또 마지막의 2195m를 경이적인 기록인 6분 06초로 커버한 발디니에게 밀려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올 가을 케플레지기는 여자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캐스터와 같이 11월 7일 뉴욕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체력적인 회복에는 문제없다. 문제는 정신적인 회복이다.」고 한 라센 코치, 미국 장거리는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 오고 있다. 이런 때 전미 매스컴의 중심지인 뉴욕에 아테네 올림픽의 미국인 메달리스트가 달리면 마라톤에 더욱 더 주목을 할 것이다. 마라톤의 부활을 목표로 메부는 뉴욕을 달리고 있다.
「13개월 동안 4번이나 마라톤을 뛰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잠깐 쉴 생각입니다. 트랙에서 빨리 달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메부에게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헬싱키 세계 선수권에서는 트랙을 달릴 것입니다.」라센 코치는 메부의 이후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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