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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장거리분석①]명문 세인트패트릭 고교

게시일 : 2003-10-15 | 조회수 : 12,640

* [케냐장거리분석①]명문 세인트패트릭 고교

케냐 장거리 육상 종목의 발전 원인 및 역사에 관한 시리즈 기획물을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들이 중장거리와 마라톤에서 세계를 제패한 원인과 발전역사를 알아봅시다.(일본 월간육상경기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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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세계 남자 마라톤界는 케냐의 승리였다. 베를린에서는 상위 5위까지를 독점. 세계 랭킹도 100위안에 48명이 케냐 선수. 케냐의 강함은 "고지 민족이기 때문에"라고 설명되어지는 점도 많지만, 해발의 높이만이 이유라면,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 선수들의 활약이 더 좋아야 한다. 남자 마라톤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10년 전의 세계 랭킹에서는 100위안에 케냐 선수는 단 3명뿐. 이디오피아 5명, 탄자니아는 3명이었다.

최근에 들어서 케냐 선수들만이 급격하게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봐도 해발의 높이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라톤보다 먼저 세계를 석권한 트랙 종목에서는 변함없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층을 자랑한다. 그런 케냐 장거리界 융성의 발자취를 소개한다.

①세 민족의 선수가 육상 선수에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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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민족 국가인 케냐에는 40개 정도의 민족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달리는 것에 적합한 민족은 "칼렌진족", "키쿠유족", "키시이족". 한편 케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축구에 강한 민족은 "루오족", "루이야족"이다. 해발이 높은 지역에서는 유전적으로 키가 크고 손, 발이 길다고 이야기하는데 역시 케냐, 탄자니아, 이디오피아 이들 고지출신의 선수들은 "달리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고 하는 체형으로 되어있다.

케냐에서는 옛날부터 국내 각지에서 육상대회가 번성했기 때문에 "루오족"이든 "루이야족"이든 어떤 민족이라도 달릴 수 있는 찬스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장거리에 적합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세 민족이 케냐의 장거리를 리드하고 있다. 그 안에서도 "칼렌진족"의 활약은 돋보인다. 2002년 남자 마라톤 100위 안에 38명이 칼렌진족이다.

②영웅 케이노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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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는 1963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과 그 식민지에 있었던 국가가 모여서 만든 종합 스포츠 대회 "커먼웰스(영연방)게임" 에는 독립하기 전인 1956년 "엠파이어 게임" 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었을 때부터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남겨 왔다.
자신들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던 영국에게 달리는 것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국민이 달리는 것에 관심을 가진 최초의 계기였다.

1963년에 독립. 다음해인 동경 올림픽에서는 8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개. 국민들은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계기로 점점 더 달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리프트발레州 출신으로 칼렌진족의 킵초게 케이노 선수는 동경, 멕시코, 뮌헨 3개 올림픽에서 금메달 2, 은메달 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젊은 독립국 케냐의 이름을 달리는 것으로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그는 "전설의 케이노"라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영웅이었다. 케이노가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을 지역의 어린이들은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칼렌진족의 육상 선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③명문 세인트 패트릭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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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케냐에서는 리프트발레州 이텐(Iten)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고등학교가 톱 선수를 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파견되어 온 교사에게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활약. 특히 1976년에 취임한 아일랜드 출신의 지리교사 코몬 오코넬은 계속해서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 피터 로노, 아브라함 후세인, 모지스 타누이 등이 학교 졸업생들이다. 카렌진족이 살고 있는 이텐은 달리는 것에 관심이 많은 지역. 그러나 세인트 패트릭 고등학교는 학비도 비쌌다. 후에 800m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윌슨 킵케터 선수도 졸업생이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서 교장이었던 오코넬이 학교 시설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특별히 학비를 면제 시켜 주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재능이 묻힌 채로 있는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오코넬은 학교가 장기 휴가인 4월과 12월에는 근처의 남녀 아동 학생들을 모아 합숙육상교실을 생각해 냈다. "이텐 트레이닝 캠프" 가 정식으로 출발한 98년 이후, 참가 희망자는 회를 거듭할수록 증가. 각지에서의 참가자가 130명 가깝게 되어서 국내 네 곳에 지부를 만들게 되었다.

캠프는 지도자 교류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근처 학교의 교사를 초대해 지도방법과 캠프 운영의 방법을 교환. 고향에 돌아간 교사들에 의해서 주니어 캠프는 리프트발레州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전에는 주니어세계대회 케냐대표의 대부분이 이텐 캠프 출신이라고 하는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라이벌의 증가에 의해 과거와 같은 대표선수 독점은 없어지고 있지만, 역사가 있는 이텐으로부터 많은 메달리스트가 탄생하고 있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이텐이 "케냐 육상의 고향" 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텐의 이름이 세계로 퍼지고 케냐의 강함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이유 등으로 오코넬이 교사로서 독일에 초청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트레이닝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기대해 모였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을 했다고 한다. 오코넬이 어린이들에게 계속 전하고 있는 것은 " 매일 계속 달려라 " 라고 하는 기본적인 것 뿐이었다.

④영국인 에이전트가 처음으로 케냐에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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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레이스가 늘어난 1989년 영국인 에이전트 킴 맥도날드가 가장 먼저 케냐 선수와 계약을 맺었다. 자신이 장거리 선수로서 케냐에서의 고지훈련 경험이 있었던 맥도날드는 선수들의 잠재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전에는 케냐의 선수가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육군이나 경찰 등의 팀에 소속되던지 유학을 가던지 두 가지 방법 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프로 육상 선수" 라고 하는 선택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맥도널드가 계약했던 당시도 많은 선수들은 육군팀에 소속된 채 맥도널드의 중개로 세계 레이스에 출전하고 있었지만 1995년 맥도널드는 보다 효율적인 연습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해발 2400m의 중앙州 야프루루에 선수를 모아서 캠프를 시작했다. "실력이 있는 선수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수준은 더욱 올라간다" 라고 하는 것이 취지였다.

캠프를 시작한 때는 싼 호텔 생활이었지만, 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아파트 하나를 구입했다. 비용은 회사이름이 들어간 유니폼 착용을 조건으로 푸마(PUMA)와 계약해 해결했다. 대회 출전 교섭의 수완도 확실했다. 맥도널드의 슬하에는 모지스 타누이, 다니엘 코멘, 노아 게니 등의 세계기록보유자, 세계챔피언이 태어났다.

야프루루의 그라운드에서 그들이 함께 트레이닝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해외의 트랙 레이스에서는 푸마의 황색 유니폼이 선두그룹을 달리는 장면이 몇 번이고 보였다. 맥도널드가 이끄는 KIM 팀은 트랙 종목에 관해서는 세계 최강이라고 누구라도 인정하고 장거리 왕국 케냐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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