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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하프,한국 여자마라톤의 희망을 보다

게시일 : 2005-06-07 | 조회수 : 12,910

* 베를린 하프,한국 여자마라톤의 희망을 보다

요즘 세계마라톤의 화두는 스피드다. 더 이상 지구력이 아닌 스피드가 마라톤 우승과 기록 경신에 직결되고 있다는 것은 이 분야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마라톤의 남녀 에이스인 이봉주 선수와 이은정 선수(이상 삼성전자)는 2005년 한 해를 스피드 향상의 해로 정했다. 상반기엔 과감히 마라톤 출전을 포기하고 크로스컨트리와 하프마라톤, 트랙에 매진해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1차로 2월 이누야마 하프마라톤에서 한국기록을 수립한 이은정과 역시 1시간3분대의 비교적 좋은 기록을 낸 이봉주는 4월 베를린 하프마라톤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기엔 해외에 여러 좋은 하프마라톤 경기가 있지만 굳이 베를린을 선택한 것은 하프코스가 베를린마라톤 코스의 일부에서 열리고 매년 수립된 기록들이 우리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이끌 수 있는 적절한 대회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3월29일 베를린에 도착한 일행은 테겔공항 인근의 대회 본부호텔(Holiday Inn Esplanade)로 향했다. 호텔은 베를린 시내에서 북서쪽 외곽에 떨어져 있어 시내로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지만 바로 앞에 대형 공원이 있고 트랙이 두 군데나 있어 선수들이 도심의 번잡함 속에서 벗어나 훈련에 매진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엘리트 경기는 4월3일 오전 11시30분에 출발하지만 그 이전 3km/5km fun run, 인라인 스케이트, 휠체어 레이스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9월의 베를린마라톤 조직위원회가 역시 이 하프마라톤 대회까지 같이 운영하여 상,하반기 베를린 도심의 축제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 외에도 베를린은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할 정도로 육상에 있어서도 최고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베를린 하프마라톤의 코스는 마라톤 세계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 코스답게 매우 평탄한 코스를 자랑한다. 또한 코스전체가 베를린의 유명 관광지를 모두 돌아가게 되어 있어 조직위원회의 관중참여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스타트 지점은 독일 통일의 상징 부란덴부르크 문과 베를린 돔 사이의 보리수나무가 늘어선 운터 덴 린덴 거리이며 1km 지점이 부란덴 부르크문, 3km 지점은 승리의 탑(지게스조이레)이 서있는 곳이다.

출발부터 5km까지는 직선 코스로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다. 하지만 6.5km 지점의 슐로스 샤를로텐 궁전부터는 골목골목에 많은 터닝(turning) 포인트가 있어 선수들이 급격히 스피드를 줄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코스다. 피니시 라인은 옛 동독의 시청이었던 붉은시청을 지나 베를린 돔 앞의 루스트 광장으로 골인하게 설계되어 있다.

시차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인 대회준비에 들어간 이봉주, 허장규, 이은정(이상 삼성전자) 선수는 공원에서의 가벼운 조깅과 트랙에서의 스피드훈련으로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봉주의 해외 인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훨씬 능가한다. 대회 조직위는 이봉주 선수를 초청선수 중 단 3명만이 참가하는 press conference에 초대했고 사진기자를 직접 훈련 장소까지 보내 훈련사진을 촬영하는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한국기록 수립과 더불어 내심 우승까지 목표를 삼고 있던 이은정 선수에겐 아직 인지도 부족 때문인지 조직위와 독일 언론의 무관심이 계속됐다. 경기 전 날 마지막 1000m 스피드 훈련을 위해 트랙을 찾은 우리들이 거의 훈련을 마칠 무렵 조이스 쳅춥바(케냐)의 불참선언으로 대회출전 선수 중 최고의 기록(1시간9분35초)을 갖게 된 독일의 루미니타 자이툭이 트랙에 들어섰다.

오인환 감독이 이미 자이툭에게 아테네올림픽에서 한 순위(자이투크 18위, 이은정 19위) 차로 뒤진 적이 있고 하프 기록도 2분 여 차이가 나는 이은정 선수에게 “저 선수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이야기 하자 이은정 선수는 특유의 명랑한 모습으로 “저 하나도 안 무서운데요. 이번엔 이겨야지요” 라고 당당하게 대답을 해 나와 감독을 놀라게 했다.

대회당일 드디어 출발 총성이 울렸다. 필자는 5km 지점에서 선수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위는 남자부의 3명의 페이스메이커 중 2명은 10km를 29분00초 페이스로 1명은 29분30초 페이스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오인환 감독은 이봉주와 허장규 선수에게 29분30초 페이스로 달리도록 작전지시를 했다. 하지만 5km 지점에 들어온 선두권 선수들 중에 이봉주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페이스는 14분24초대. 너무 빠른 페이스였다. 경기 전날까지 몸이 회복되지 않았던 이봉주 선수에겐 무리한 페이스였다. 허장규는 10여 미터 떨어져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벌써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 뒤 도착한 여자부 선두권엔 당당히 이은정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5명의 케냐선수들과 독일의 자이툭과 함께였다. 페이스도 16분30초로 적당했다. 필자는 대로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11km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오인환 감독은 대회운영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으나 이 차가 주로 남자선두만 따라가고 있어 여자부의 경기상황을 체크하지 못하고 있었다. 11km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10여 명의 남자선두 그룹이 지나갔다. 하지만 5km 지점에선 있었던 이봉주와 허장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둘은 약 2분 여 후 칠레선수와 나란히 11km 지점을 통과했다. 하지만 표정이나 달리는 모습에서 목표로 했던 1시간2분대 진입은 힘들어 보였다.

곧 이어 이은정이 포함된 여자부 선수들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은정이 맨 앞에서 레이스를 이끌고 있었다. 여자부엔 페이스메이커가 없어 앞에서 달린다는 것은 그 만큼 힘든 상황임에도 이은정은 맨 앞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지난 5년간 마라톤 지원업무를 담당하면서 이봉주 선수를 제외한 어느 선수도 해외의 국제대회에서 계속 선두권에서 달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던 나에겐 하나의 사건이었다. 파이팅을 외치는 나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골인 후 들은 이야기 이지만 케냐선수들과 자이툭이 너무 느린 페이스로 달려 이은정이 15km까지 페이스를 이끈 것이었다.

경기 전에 여러 차례 코스답사도 하고 11km 지점에서 골인지점까지 지하철로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음에도 왜 이리 전철은 느리게 가는 것인지. 피니시 라인에 도착하자 이미 남자부 선두는 골인한 후였다. 케냐의 폴 키무굴이 1시간1분04초로 우승이었다.

그리고 약 3분 여 후 허장규선수가 1시간4분30초로 12위로 골인했다. 당초 목표였던 1시간2분대 진입에는 못 미쳤다. 경기 전까지 좋은 컨디션이어서 많은 기대를 했지만 역시 문제는 스피드와 경험이었다. 초반 5km의 14분30초의 빠른 페이스가 부담이 됐고 수많은 케냐선수들에게 위축이 된 것이다. 이봉주도 마찬가지로 초반 5km의 오버페이스로 1시간5분25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14위에 머물렀다.

이은정, 한국기록을 세우며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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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내 아나운서는 여자부의 선두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말 중에 자이툭과 한국의 이은정이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2001년 이봉주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할 때도 그랬지만 우리 선수가 선두에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나 중계를 보게 되면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곤 한다. 이날 베를린 하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선두가 보였다. 하지만 이은정이 아닌 자이툭이 먼저였다. 자이툭은 19km까지 단 한 번도 앞에서 달리지 않다가 마지막 남은 2km에서 경쟁자 이은정을 따돌리고 1위로 들어왔다. 기록은 1시간11분04초. 이어 이은정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우승은 놓쳤지만 1시간11분15초로 한국기록이었다. 불과 한 달 전 이누야마 하프마라톤에서 수립한 한국기록 1시간11분36초를 21초 경신한 것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단 한 명의 케냐 선수들에게도 앞선 순위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20km 지점에서 차에서 내려 이은정에게 마지막 스퍼트를 주문했던 오인환 감독이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이은정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감독의 얼굴에는 기록달성에 대한 기쁨과 목표였던 10분대 진입에 대한 아쉬운 표정이 동시에 보였다.

절반의 성공, 하반기 기록경신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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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인지점인 루스트 광장은 관중들로 인산인해였다. 베를린 하프마라톤은 관중이 10만명, 출전선수가 1만7천명인 대규모 이벤트로 여타의 유명 마라톤 대회처럼 관중의 열기가 대단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회들도 많은 관중이 참여하는 대회로 발전해야 진정한 의미의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선수들은 엘리트든 마스터스든 많은 관중 속에서 더욱 힘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베를린 하프마라톤 출전목표의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또한 이봉주에 이어 세계 마라톤계에 한국선수인 이은정을 알리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선수들은 6월까지 트랙레이스에 돌입해 스피드를 끌어 올린 후 하반기 마라톤 한국기록 경신에 도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국 엘리트 마라톤이 침체되어 있다고 우려하는 분들이 많지만 단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을 육성하려는 팀들이 있어 미래가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노력하는 곳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런닝라이프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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